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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플을 통해서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라는 힙합 서적이 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잘나가는 뮤지션의 음반도 몇천장 팔기 힘든 세상에 하물며 22,000원이라는 고가?의 서적이 얼마나 팔릴 수 있을까?' 란 걱정이었다. 시기적으로 한국힙합이 상한가를 치는 시기도 아니고... 하지만 왠지모를 마음에 걱정을 가장한 얄팍한 망설임을 접어두고, 술값좀 아끼는 셈 치고 한번 지르자란 마음으로 결제를 해버렸다. 몰론 지름의 밑바탕에는 2천부 초회 한정판에만 비트메이커들의 10개 트랙이 담긴 Instrumental CD 부록이 탐나는 얄팍한 마음도 있었다.

 책이 오기전에 사실 누구나 알법한 한국힙합 족보를 수직적으로 써내렸겠거니 했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랩댄스와의 결합으로 시작된 한국힙합의 역사부터 커뮤니티, 레이블, 컴필레이션 앨범, 클럽, 패션, 비보이 등 다채로운 스펙트럼에 비추어 한국힙합의 시작과 과거 그리고 현재를 충실히 조명하고 있었고, 매 챕터마다 아티스트 및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배치하여 다채로운 구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몇몇 아티스트 인터뷰나 초기 한국힙합 시기에 관한 글에서 나오는 야사와도 같은 몇몇 숨겨진 이야기들을 읽는 재미는 쏠쏠하기 그지 없었다. 굳이 흠을 잡자면, 비보이나 그래피티 쪽이 너무 빈약하게 다뤄졌나 싶은 마음이 들긴 한다. 허나 그만큼 힙합이란 문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지는것 같기도 하고.. 사실 흠을 잡기도 그런것이, 힙합의 힙자도 낮설던 90년대에서 Epik High가 간간히 뮤직 차트 1위를 먹는 지금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힙합 관련 서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중에 한국힙합만을 제대로 조명한 책은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 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가슴아픈 현실이긴 하지만 그만큼 아직 문화적으로나 시장적으로나 한국힙합이 갈길이 멀구나 싶기도 하고...

 책이 도착하고 동봉된 Instrumental CD를 들으며 책장을 넘기는 첫 순간은 흥미로웠지만, 마지막 장을 덮은 마음은 사실 무겁기 그지 없었다. 먹고살기라고 명명된 마지막 챕터에는 음악뒤편에 가려졌었던 암담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투잡과 음악사이에서 갈등하는 아티스트, 시장으로써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한 뮤지션의 자조섞인 말,  음반 발매 자체가 적자라고 말하는 레코드 회사의 사장. 하지만 그럼에도 힙합이라는 끈을 놓지않는 이들의 말들로 책을 끝맺고 있다.

 가리온부터 시작했던 올드비에겐 그땐 그랬지란 추억을 떠올려줄테고 Epik High에 반해 힙합에 발을 담근 뉴비에겐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흐름을 알게 해줄테고, 나같은 야매스런 리스너 라이프를 지내는 이들에겐 따끔함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어느 타입에 속하건간에 한국힙합을 즐겨 듣는 이들이라면 22,000원을 지불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