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에게 가요/유행가라는 개념을 처음 잡아준곡은 심신의 '오직 하나뿐인 그대' 였었다. 가요 톱텐에서 처음본 예의 쌍권총 춤과 그의 노래는 '노래 좋다'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뿐이었다. 하지만 이후로 가요톱텐은 매주 가능한 빼놓지 않고 시청하게 되었는데,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의 무대를 보고선, 어른들에게 용돈을 타내 5분 거리에 위치했던 근처 서점의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 테이프를 구매하였다. 본인에게 있어 최초의 음반 구매이자, 음반 단위의 리스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고 할수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해서 몇번 검색하면 나올만한(누구나 말할법한) 이들의 음악에 대해 썰을 풀자면, 이들의 1집은 가요 시장에 간간히 시도되던 여타 댄스 음악보다 훨씬 Urban 한 느낌으로 만들어 대중을 상대로 히트시켰고, 최초로 유연한 Flow 의 랩을 가미했으며, 댄스 음악에 걸맞게 들려주는것만이 아닌 보여주는 퍼포먼스로써 댄스를 구사하여 눈과 귀를 만족 시켜준 음악이었다. 이중 랩에 대해서 좀더 썰을 풀어보자면 한국가요에 있어서 최초의 랩 하면 사람마다 꼽는 곡이 다르다. 혹자들은 난 알아요 이전에 랩이란 형태가 가요에 차용된 사례로 홍서범의 김삿갓, 현진영의 1집 New Dance 를 들기도 하는데, 이 두음악을 제치고 난 알아요의 랩에 최초란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홍서범의 김삿갓은 랩이라고 하기에 플로우가 너무나 단조롭고, 현진영의 New Dance 앨범의 랩은 난 알아요에서의 랩처럼 전면적으로 부각되는것이 아닌 간주부분에 소스로써 쓰이는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최초의 제대로 된 랩은 난 알아요의 Verse 라고 생각한다. 1
서태지와 아이들 1~2집과 당시 활동 모습
대중적인 인기를 2집을 통해 성공적으로 재확인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대중들에게 헤비한 기타 리프가 요동치는 락으로 채워진 3집을 들이밀었다. 당시의 본인의 느낌을 생각해보자면, 황당스러웠지만 또 어색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비평가들이 말하듯,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의 근간을 이뤘던건 락음악이었으니... 3집의 파괴력은 사운드 뿐만이 아니었다. 교실이데아의 메세지는 주 청자층이었던 학생들의 대변 그자체였었고, 발해를 꿈꾸며는 이들을 딴따라로 치부했던 어른들에게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어느 비평가 말마따나 대중적 인기에 사회적인 영향력까지 더하게 되었다.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반대급부마냥 미디어의 때리기의 강도도 더해졌다. 음악을 거꾸로 틀면 악마의 메세지가 나온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을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이 사실을 처음 퍼트린 사람 참 궁금하다. 이제는 자신도 부끄럽다고 생각하겠지?), 미디어들은 이를 가지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흠집내기에 바빴었다. 이런 미디어가 뵈기 싫었던건지 :) 서태지와 아이들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4집 앨범 작업을 위해 다시금 대중앞에서 사라지고 만다.
서태지와 아이들 3~4집과 은퇴까지의 활동 모습
대중음악인으로써 정점에 달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4집 발매후 이듬해인 96년 1월 31일 서태지와 아이들은 돌연 은퇴를 발표한다. 그당시 그들의 속마음이야 누가 알겠냐만은 살이 내리고 뼈를 깎는 창조의 고통과 부담감과 평범함을 원해서 보통의 젊은이로 돌아가길 원한다는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여지껏 그래왔던것처럼 앨범준비의 잠적이 아닌, 기약없는 잠적을 선언한것이다. 소녀들은 울고불고 소년들은 아쉬워했고, 미디어들은 벌떼마냥 기사들을 써댔었다. 그리고 그들은 가요계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그대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가요계의 전설로 영원히 미화될수도 있었겠지만,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름을 뗀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 3인은 각자의 솔로활동을 재개하였다. 서태지는 자신의 음악적 근간이었던 락음악을 솔로 앨범을 통해 계속 들려주고 있고, 사업가로 변신한 양현석은 거대 레이블의 C.E.O가 되었다. 이주노는 (눈물 한번 훔치고) 사실 나머지 둘에 비해 이렇다할 활동을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간간히 미디어를 통해 회자되고 있다.
썰을 풀고나니 이건 순 남들 다 알법한 이야기만 늘어놓은것같다. 그도 그럴것이, 92년 그룹 데뷔이래 솔로 7집을 발매하기까지 십수년간 매 앨범이 발매될때마다 전국이 들썩하고 수많은 방송프로와 텍스트가 양산되지지 않았던가. 본인 깜냥에 뭐 특출날 이야기가 나올 껀덕지가 있겠냐만은... 90년대에 소년/청소년기를 보낸이들의 개인음악사에 서태지와 아이들을 빼놓고 이야기할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제는 그때와는 음악취향도 달라지고, 그 시절 마냥 서태지의 솔로앨범에 가슴벅차오르지는 않지만, 추억할수 있는 최초의 뮤지션이기에 그 남다름이 더한것 같다.
- 힙합좀 들었다 하는 혹자들은 '난 알아요'의 라임의 문제를 지적할지 모르겠지만, 동어반복이라는 단순한 형태지만 라임을 어느정도 내포하려는 노력은 분명히 있었다. 여담이지만 정말 순수한 의미에서 최초의 랩/힙합음반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후 5년뒤인 1997년에 발매된 김진표 1집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 Come Back Home 에서 서태지가 선보인 일명 코맹맹이 랩은 명백히 Cypress Hill 의 B-Real 의 플로우를 모방한것이다. 랩의 플로우말고도 곡의 분위기도 비슷했기에 표절 논란 까지 일어났었지만, 결국은 표절이 아닌것으로 판명이 났다. 표절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한 랩퍼의 플로우를 그렇게 대놓고 따라하는건 서태지 다운 방법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서태지가 솔로 앨범으로 힙합 앨범을 내놓았다면, 아마 본인은 컴백홈의 랩을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했을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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